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초 패러독스 (문단 편집) == 남는 의문점들 == * '''남성은 언제나 폭력을 막을 수 있는 투사인가?''' 위에서 [[잠재적 가해자]] 논리에 대응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이것이 일반화인가에 대한 의문점은 책의 최후반부에 이르도록 가시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남성들은 폭력의 피해자를 도울 힘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 간의 위계적 권력관계의 영향이 존재할 수도 있고, 당장 맞서고 싶어도 차후 계속 봐야만 하는 상호의존 관계라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연예계나 재벌 가문들에서 이런 일이 많다. 누군가가 행실이 개차반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힘이 없는 남성은 다른 여성에게 "○○○와는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 정도로 슬쩍 조언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남성들조차 자기 발언에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설령 관망만 한다 할지라도, 즉석에서 불쾌해하지 않았더라도 차후 그 가해자와 거리를 둘 수도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적 발언이라면, 많은 경우 [[무플방지위원회|침묵은 긍정보다는 부정으로 이해된다.]] 주위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어떤 가해자는 자신이 승인되었다고 여겨서 더욱 신이 나는 반면, 어떤 가해자는 고립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차이가 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심지어 이런 가해자를 두둔하고 맞장구치는 남성이 있다 해도, 그 남성이 권력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면 가해행동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두둔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선뜻 묻기 어렵다. 결국 본서의 메시지는 '''만약 당신에게 힘이 있다면 과감히 용기를 내서 도우라'''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본서가 잘못된 일반화를 한다면 그것은 "모든 남성들을 범죄자 취급한다" 가 아니라 "모든 남성들이 다 폭력을 막아설 힘이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 가 될 것이다. 대체로 남성들은 힘이 있겠지만, 특정 남성이 막지 못하고 있을 때 비난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 '''"빅 텐트" : 정치공학적으로 손을 잡자는 것인가?''' 마지막 13장에서 빅 텐트를 언급하는 것은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공통의 적이 있을 때 서로 이질적인 집단들이 그 적과 싸우기 위해 서로의 차이점을 제쳐두고 일단 연대하자는 논리다.]] 이것은 효과성의 차원에서는 나름대로 효과적인 정치공학적 논리이긴 하지만, 문제는 여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수많은 진보측 활동가들이 이런 이유로 인해 [[공화당(미국)|공화당]]이나 [[뉴라이트]], 수구 세력에게 부지불식간에 이용당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목표의식이 같다고 해서 그 방법론까지 같다는 보장은 없다.''' 예컨대 국내에서도 신변의 위협과 불안을 호소하는 여성들 중 많은 수가 '''[[권위주의]] 통치나 [[경찰국가]]적 이상을 선호'''하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워마드]] 등의 유사 집단들이 [[친박]]단체의 2중대가 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 '''[[에미넴]]에 대한 비판은 주효한가?''' 9장에서 저자는 긴 지면을 할애하여 에미넴의 노래 가사가 어째서 남성들에게 해로울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관찰학습|에미넴의 가사에 흠뻑 빠져든 남성들이 에미넴의 노래 가사처럼 똑같이 폭력적이게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그 대신, 그런 폭력적인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저자는 예술의 자유와 검열의 논리 중에서 무작정 후자를 고르지는 않지만, 저자가 기대하는 '비판적 의식' 이 팬덤 내부에서 전혀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닐 수 있다. 예컨대 에미넴의 팬들은 에미넴의 가사 하나하나를 자신의 삶의 가이드라인(?)으로서 맹종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에미넴의 우울한 정서에 공감하는 것일 수 있다. 즉 에미넴의 메시지가 규범적이고 당연해서가 아니라, '''비규범적이고 위험하기 때문에''' 인기를 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80년대에 "[[악마 숭배자|아기의 시체를 공양하라, 동물을 때려죽여서 바쳐라, 사탄을 숭배하라]]" 고 떠들던 일부 몰지각한 음악가들의 대다수는, ([[신해철]] 씨가 한때 투고했던 칼럼인 《음악과 악마주의》 에서 언급되듯이) 이후 중년이 되어서는 "남들 보기 민망하다" 면서 방정하게 처신하고 [[교회]]도 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근본주의]] [[개신교]]계가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 고 맹렬히 질타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 수사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이런 음악가들의 활동이 정말로 모방범죄를 불러일으켰다는 증거물도 없었다. 당시 그런 음악가들에게 열광하던 팬들 역시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었고, 오히려 그들을 걱정하던 부모 세대보다 더한 '[[꼰대]]' 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에미넴이 어떤 실질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할 때,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세대를 이어 늘 반복되어 오던 대중문화 비판을 단순히 반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 '''[[음란물]] 비판 : 보지 말라는 것인가?''' 저자는 10장에서 음란물(특히 하드코어 포르노)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것이 마치 남성의 폭력적인 성관계가 당연하다는 것처럼 남성들에게 거짓 [[성교육]]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물론 서구권의 하드코어 포르노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극단적이며 과격하고 가혹한 [[섹스]]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며, 페미니스트 중에도 안드레아 드워킨(A.Dworkin)의 《[[포르노그래피]]》 에서 격렬한 어조로 이를 다루기도 했다. 그런데 본서가 흥미로운 것은, [[남성]]의 입장에서 음란물을 비판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금욕주의|그럼 보지 말라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나올 때 본서의 논조는 조금 멈칫하는 느낌을 보인다. '''본서는 남성이 음란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못박아 놓지 않는다.''' 남성은 [[성욕]]을 관리하고 해소해야 하는 당사자이며, 이 지점에서 음란물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음란물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금욕주의]]를 대안으로 내놓는다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본서는 음란물에 대한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힘주어 말하지는 못한다. 사실, 일본의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의 경우는 음란물의 순기능으로 "마음 속의 욕망이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상으로 표현됨으로써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 는 점을 들고 있다. 우에노는 [[아동 포르노]]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음란물에 대해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에노가 폭력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그저 '''"자신이 갖고 있는 [[모순]]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자"''' 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 만족한다. 이는 《[[남성 페미니스트(도서)|남성 페미니스트]]》 에서 많은 철학자들이 제안하는 것과도 상통하지만, 저자의 지침을 따르고자 하는 남성들에게는 '''다소 막연한 것''' 역시 사실이다. > "나는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기준을 다른 남자들에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성폭력이나 성차별적인 행태에 맞서고 싶은 남자들은 그 누구라도 자신이 지키지도 않는 기준을 들이대 남을 비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거나 어떤 모순에 직면했을 때 그저 정직해지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해결책이다." > ----- > - pp.324-32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